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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리뷰: 민주주의는 항상 나중에 대가를 요구합니다

by bluesky37 2025. 6. 8.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 작가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되짚으며 민주주의의 비용과 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에세이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결코 공짜가 아님을, 그리고 민주주의는 결국 책임과 참여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책 사진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리뷰: 민주주의는 항상 나중에 대가를 요구합니다

 

1. 후불제라는 개념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제목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민주주의는 처음에는 싸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시간이 흐른 뒤에 커다란 책임과 대가를 요구하는 ‘후불제’라는 뜻입니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개인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정리합니다. 1987년 6월 항쟁, 2002년 촛불 시위, 2016년의 탄핵 정국 등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는 이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 나열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때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고,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경험이고, 이 경험은 고통과 불안을 수반하는 것이며, 그 고통을 감수한 사람들 덕분에 현재 우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지금 당장 비용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훗날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따라 돌려받게 되는 시스템이라고. 그 말에 공감하며, 민주주의가 결코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2. 정치 혐오를 넘어: 시민의 역할에 대한 성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치에 대한 저자의 시선입니다. 유시민은 정치가 우리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무관심이나 혐오를 드러낸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합니다. 그는 정치 혐오가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시민이 정치에서 물러난 자리를 결국 권력과 자본이 차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는 통념을 반박합니다. 정치야말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며, 그 안에 책임과 윤리, 타협과 상호 존중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시민’의 정의를 단순히 투표하는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상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습관, 불합리에 저항하는 행동까지 모두 정치적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정치는 멀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3.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후불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민주주의는 한 번 이룬다고 끝나는 완성형 시스템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돌보고 유지해야 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유시민은 이를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꾸준히 감시하고 비판하며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그는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정치적 갈등이 더욱 격화된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정보의 소비가 편향될수록 우리는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을 잃게 되고,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예술’이라는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갈등이 없어서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성숙해질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작동합니다. 유시민의 이 책은 우리에게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태도에서 민주주의가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민주주의를 이론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