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진 않지만,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쓰인 14권의 역사서를 통해 역사 서술의 본질을 탐색한다. 저자는 해답보다는 다양한 시선과 해석의 차이를 보여주며, 독자가 직접 생각하게 만든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기록된 역사'와 '기억되는 역사' 사이의 간극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역사라는 것이 단지 과거를 담은 그릇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과 목적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서사임을 느꼈다.
1. 역사는 언제나 해석의 결과물이다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에서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서술’이며, 따라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해석’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객관적인 역사’라고 믿는 것들조차 결국은 누군가의 관점, 누군가의 목적, 누군가의 시선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이를테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전쟁의 승리자를 중심으로 쓰인 서사이고, 사마천의 『사기』는 유교적 가치와 도덕적 정당성을 담으려는 시도가 명확하다. 그 시대의 권력, 문화, 종교, 사회적 환경이 모두 역사 서술에 스며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대목은, 역사가 ‘무엇을 기록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생략했느냐’는 점이다. 어떤 사건은 영원히 기록되지 않거나, 일부러 지워진다. 결국 역사는 완성된 정답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써지는 초안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책의 구성과 흐름이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나 역시 역사서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을 유지하게 되었고, 이 점에서 이 책은 정보보다 사유를 남기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2. 시대를 담는 거울로서의 역사책들
『역사의 역사』는 다양한 역사서를 소개하며 그것들이 쓰인 배경과 목적, 서술 방식의 차이를 면밀히 보여준다.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책이 어떤 시대의 문제의식에 답하기 위해 쓰였는지를 파고든다. 이를 통해 독자는 역사가 단지 과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세계관까지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이 지점이 흥미로웠다. 마치 하나의 역사책이 하나의 시대를 증명하는 텍스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십자군 이야기』는 유럽의 종교적 열정이 어떻게 전쟁을 정당화했는지를 보여주고,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카는 역사의 본질을 논하면서 역사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유시민은 이러한 역사서들을 나열하되, 자신의 정치적 시선을 강하게 투영하지는 않는다. 이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단지 읽고 분석하며, 독자에게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특정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접하게 되었고, 그 덕에 과거의 어떤 일이 단 하나의 진실로 정리되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3. 과거는 끝났지만, 역사는 계속된다
『역사의 역사』의 말미에서 유시민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소개한다. 이는 전통적인 역사서와는 결이 다른, 인류학적 통찰이 담긴 저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포함된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더 이상 연대기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 사회와 문명 전체를 해석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역사’라는 단어 자체가 시간보다 ‘인간’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과거를 본다. 다큐멘터리, 유튜브 콘텐츠, SNS에 떠도는 역사 짤까지.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온전한 ‘기록’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서사’인지 되묻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왜곡된 역사’라는 표현도 일방적인 시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역사는 본래 누군가의 관점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결국 과거는 끝났지만, 역사는 계속된다. 그 기록은 오늘도 쓰이고 있고, 우리는 그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역사의 역사』는 그 흐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역사는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