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는 법학자이자 저술가인 박홍규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과 삶을 권력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읽어낸 책입니다. 카프카의 작품은 늘 불합리한 체계와 맞서 싸우는 개인의 고통을 그리고 있었지만, 이 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카프카 자신의 윤리의식을 더욱 명확히 드러냅니다. 문학을 통해 권력을 응시하고, 삶의 본질을 파헤치는 시도는 이 책을 단순한 평전이나 해설서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카프카의 저항이 단지 문학적 장치가 아닌, 존재론적 태도였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카프카의 문학은 현실의 은유였습니다
『변신』이나 『소송』 같은 작품에서 보이듯, 카프카의 세계는 어둡고 부조리하며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인간을 억누릅니다. 박홍규는 이 부조리가 단지 상상 속의 세계가 아니라, 카프카가 체감한 현실의 구조였다고 말합니다. 비인간적인 관료제와 억압적인 법체계, 가부장적 권위는 모두 그의 문학에서 강한 메타포로 작동합니다. 문학은 현실을 직시하는 렌즈였고, 동시에 그 현실에 침묵하지 않는 목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카프카는 결코 체념하지 않았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현실을 교란하려 했습니다.
저는 카프카가 택한 은유의 방식이 매우 현대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사회를 고발하지 않았지만, 독자는 그의 문장을 읽으며 필연적으로 현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억압과 무기력, 불안과 고독이 담긴 그의 이야기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들입니다. 문학이란 결국 당대의 시대정신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행위이며, 카프카는 그 점에서 가장 치열한 시대의 기록자였습니다. 이 책은 그런 문학적 기획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2. 권력에 대한 침묵과 저항 사이
카프카는 체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침묵은 일종의 저항이었습니다. 박홍규는 이 점에 주목하며, 카프카가 보여준 침묵의 윤리를 다시 조명합니다. 그는 법을 공부했고 관료로 일했지만, 그 체계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방인이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문장은 그 자체로, 체제 바깥에서 발화되는 외로운 목소리였습니다. 침묵 속에 숨은 카프카의 윤리는 도리어 체제를 더 분명하게 폭로합니다.
저는 침묵을 수동적인 태도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며, 때론 가장 강력한 거부의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카프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체제의 공허함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글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그 절망 안에는 희미한 연대의 가능성이 스며 있습니다. 박홍규는 이러한 윤리적 태도를 놓치지 않고 짚어줍니다. 저항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작은 불일치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3. 작가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카프카
박홍규는 카프카를 단지 문학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는 카프카의 인간적인 고뇌, 신경증적 불안, 가족과의 갈등, 일상의 고민들까지 세심하게 조명합니다. 이 책에서 카프카는 더 이상 추상적인 고전 작가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체제와 부조리에 끊임없이 마찰을 빚으며, 자기 안의 감정과 싸워야 했던 한 인간의 내면이 섬세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작가의 글 뒤에 존재하는 생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문학이란 결국 고통과 불안, 질문과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카프카는 완벽하지 않았고,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늘 자신을 검열했습니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박홍규의 글은 카프카의 문학을 해석하는 동시에, 한 인간의 고독한 저항을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이 책은 그 시선 덕분에, 문학 너머의 카프카를 비로소 만날 수 있게 해줍니다.